2014.09.19 14:35 리뷰 소개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 책 시사회

(시사회 진행: 8월 7일 ~ 8월 20일 | 당첨자 발표 :8월 21일 | 리뷰작성기간: 9월4일 ~ 9월17일)


*우수 리뷰어 : 낭만필객  님(2014.09.13 등록)


'만약'과 '그러나'의 역사




역사는 언제 '만약'과 '그러나'의 긴장이 존재한다. 임진왜란으로 불려진 7년 전쟁에서 '만약 이순신이 없었다면' 가정을 해보자. 상상하기도 싫을 만큼 끔찍하다. 책 제목은 다행히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이다. 이순신은 언제나 성군이었고, 불가침의 성역이었다. 이순신에게 도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저자가 10년전 <이순신의 두 얼굴>을 쓰면서, 성군이 아닌 평범한 사람인 '이순신'을 그렸다. 철천지 웬수 원균도 변명해 주면서 말이다. 나는 이 책을 가지고 있다. 중간에 읽다가 내려 놓기는 했지만, 나름 의미있는 이순신의 삶을 조명했다. 평범했던 이순신이 어떻게 비범하게 되었는가를 밝히려는 목적이 <이순신의 두 얼굴>의 집핍 의도였던 셈이다. 물론 깍아 내리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십년 후, 저자는 다시 대폭적인 개정을 시도했고, 전번 책과 다른 시각에서 이순신을 조명했다. 그리고 제목을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로 정했다. 옳은 평가이다. 10년 동안 다시 이순신의 행적을 살피고, 모호하고 일방적인 관점에 의해 흐릿해진 원균의 초기 행적도 복원했다.(7쪽) 한산도에서 잠시 머물 때의 전술도 '신화가 아닌 사실'에 근거해 다루려고 애를 썼다. 저자는 7년 전쟁은 초기에 끝낼 수도 있었는데, 그것을 이루지 못한 안타까움도 드러내고 있다. 무슨 근거로 단기간에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또 하나, 치밀하게 난중일기를 살피면서  <난중일기>에 날짜와 보고서와 다른 오류들이 많다는 점도 찾아 내었다. 일방적으로 난중일기를 믿을 수 없다는 것도 밝혀 냈다. 이것은 저자의 치밀한 노력이 아니면 알아낼 수 없는 것들이다. 저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임진왜란은 한 번 시작된 전쟁이 7년 동안 이어진 것이 아니다. 1592년 1차 침입을 '임진왜란'으로, 1597년에 재차 침입한 정유재란으로 구분된다.  저자는 '왜'라는 표현은 일본 해적을 뜻하기 때문에 정식적인 일본군이 쳐들어온 전쟁이기에 '왜란'은 적합하지 않다고 말한다. 옳은 말이다.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100년 동안 이어진 내란을 평전한 풍신수길은 그 여파를 몰아 조선과 명까지 집어 삼키려는 야욕을 부른다. 명으로 가는 길을 열라는 명분으로 조선을 먼저 침략한 풍신수길은 결국 7년 동안 조선을 넘지 못하고 양국에 큰 피해를 남기고 막을 내린다. 


무능한 조정


역사는 무한반복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선조는 일본군의 코 앞에 당도하자 체면을 벗어던지고 100명도 안되는 사람들과 함께 도망친다. 400년후 이승만은 선조의 뒤를 밟는다. 선조가 북으로 도망 갔다면, 이승만은 남으로 갔다. 통신사를 보내 달라는 일본의 요청에도 조선을 몇 번을 거절했으며, 서인과 동인으로 갈라져 정치적 파당을 이룬 까닭에 돌아와 보고하는 것까지도 당파의 이익을 앞세웠다. 결국, 전쟁을 준비할 시간이 충분한 시간을 의미없이 흘려 보내고 말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1592년 4월 14일 아침 고니시의 제1군의 부산항에 내려 상륙작전을 감행할 때도 조선수군은 그들을 대적한 엄두도 내지 못하고 좌중지란에 빠질 만큼 무능을 보였다.  이 때는 영국이 스페인 무적함대를 맞아 대승을 거둔 칼레해전이 4년 지난 해이다. 이순신을 파직함에 있어서도 선조는 앞뒤를 따져 처리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처리해 훗날 조선은 원균의 무능으로 철저하게 궤멸당하고 만다.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 능력이다.


이순신의 백의 종군과 부활


이 책의 탁월함은 1차자료인 <난중일기>와 <선조실록>을 치밀하게 비교해가며 분석한다. 특히 이순신이 원균과의 불화설로 인해 원균의 모함을 받고 투옥되었다는 기존학설을 뒤엎기까지 한다. 이 부분은 6장 '이순신의 실각과 원균의 조선 수군 궤멸까지'에서 다룬다. 이덕형의 모함으로 이순신은 투옥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는 기존의 학자들이 선조실록을 면밀하게 살피지 않음으로 오해한 것으로 치부한다.


학자들이 이덕형의 보고서에서 이순신과 원균을 '대질'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원문에는 대질이 아닌 '상힐'(서로 비난함)으로 되어 있다. 어쨋든 이순신은 부산화제사건과 가토 장군의 2차 침입 때 부산으로 나아가지 않은 것으로 인해 선조의 미움을 받게 되고, 실각하게 된다. 실각의 자리에 원균이 앉게 되고 조선수군은 원균의 지휘아래서 연패를 거듭하며 궤멸하고 만다. 원균이 이순신을 모함했다는 부분도 '모함'이라고 단정짓기에 모호하다. 이러한 원균 모함론은 후대에 이순신을 신화화 작업을 통해 이루어진 것은 아닐까 저자는 조심스레 추측한다.


원균은 철저히 무능했다. 그는 이순신의 정한 규칙을 모조리 변경하고, 이순신이 신임하던 장수들을 모두 내 몰았다. 이뿐이 아니다. 


"원균은 이순신이 정한 제도를 다 변경하고 신임하던 모든 장수와 군사들도 내쫓아버렸다. (중략) 원균을 좋아하는 첩을 데려다가 그 집에서 살며 이중으로 울타리를 하여 안팎을 막아놓아서 여러 장수들도 그의 얼굴을 보는 일이 드물었다. 그는 또 술마시기를 좋아하여 날마다 술주정과 성내는 것을 일삼았다."(500쪽, 징비록)


리더십도 없고, 자기관리도 없고, 술과 색을 밝히는 그야말로 무능한 장수 그대로 였다. 군의 기강은 무너지고, 탈영법을 속출했으며, 장수들과의 회의나 작전도 없었다. 이것이 원균의 모습이었다. 원균이 부산으로 100여척을 동원하여 1차 출항을 한다. 1597년 6월 18일이다. 안골포해전이다. 원균은 고작 두 척의 배를 쳐부수 조선 장수 두명을 잃었다. 다시 출전한 가덕도 해전에서도 아무런 성과도 없이 되돌아 왔다. 2차 출항에서 부산앞바다에서 패하고 한산도 돌아가지 않고 거제 칠천도 앞에서 머물렀다. 권율의 그를 불러 들여 곤장을 쳤지만, 원균은 돌아가 각성하지 않고 술을 퍼 마시고 잠이 들었다. 결국, 1597년 7월 16일. 일본 수군은 심리적을 구사하면서 조선 함선에 불을 놓고 달아난다. 아무리 조처를 취하지 않자 다음 날이 밝자 1,000천의 배를 앞세운 일본 수군은 조선 수군을 총공격하여 궤멸 시킨다.


"그리고 조선 수군은 전멸했다. 도망간 경상우수사 배설의 함선 12척을 제외하고 조선의 함선은 몽따 화염에 휩싸이고 바다에 수장되었다. 거북선도 이날 최후를 맞았다. 수군통제사 원균은 물론 전라우수사 이억기, 충청수사 최호 등에게도 최후의 날이었다."(521쪽)


한 사람의 리더의 잘못, 조선을 풍전등화 속으로 몰아 넣었다. 이것은 원균의 잘못이 아니다. 무능한 선조의 잘못이다. 


"조선의 운명이 다시 벼량 끝에 내몰린 이때, 국왕 선조는 참으로 못난짓만 골라서 하고 있었다."(535쪽)


그러나

 "신에게는 아직 전선 12척이 있습니다."


그랬다. 아직 이순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12척의 전선이 있었다. 1997년 7월 22일 선조는 이순신을 다시 3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한다. 이순신은 임명을 받고 현장을 답사하고, 곧바로 전남 장흥의 군영구미로 향한다. 8월 17일 군영구미에 도착했으나 배는 없었다. 다시 발길을 돌려 회령포인 지금의 회진으로 이동한다. 그곳에서 다시 배를 정비하여 고작 11 후에 8월 28일 역사에 길이남을 명량해전이 일어난다. 


도서정보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

저자
김태훈 지음
출판사
일상이상 | 2014-07-17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이순신의 두 얼굴》의 저자 김태훈, 10년간의 ‘팩트탐사집필’...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우수 리뷰로 선정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축하2




posted by Daum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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